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손바느질로 만든 한 땀의 아름다움

mystory54590 2025. 7. 6. 14:26

빠름이 미덕인 시대에 느림을 선택한 한 사람

2025년 현재, 패션산업은 완전히 자동화되어 있다. 원단이 자동 재단되고, 바느질은 로봇 팔이 담당한다. AI는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해 디자인을 생성하고, 공장은 수백 벌의 옷을 단 몇 시간 만에 생산해 낸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도, 서울 마포구의 한 오래된 주택가에서는 하루 종일 ‘사각사각’ 실을 꿰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64세의 박해선 장인이 운영하는 작은 손바느질 공방, 그곳에서 그는 지금도 한 땀 한 땀 옷을 짓는다.

그는 30년 넘게 손바느질만을 해온 장인이다. 미싱 한 대 없이 모든 옷을 바늘과 실, 손가락의 압력으로 만들어낸다. "사람한테 맞춘 옷은 기계가 만들 수 없어요. 사람 손은 실의 긴장감도 조절하고, 그 사람 몸에 맞는 흐름도 기억하죠." 하루에 한 벌, 혹은 이틀에 한 벌이 작업 속도의 전부다. 그 대신, 그의 손을 거친 옷에는 공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온기와 세심함이 담긴다.

박 장인은 디자인보다 '맞춤'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고객의 어깨선, 허리 굴곡, 팔의 각도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종이 패턴도 직접 그리고, 바느질 선을 손으로 표시한다. 이 작업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사람의 걸음걸이, 웃을 때 움직이는 옷자락까지 생각하며 만들어야 진짜 맞춤이죠." AI는 데이터로 치수를 잡지만, 그는 감각과 경험으로 몸의 흐름을 기억한다.

AI 시대 손바느질

손바느질이 가진 감각,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정교함

손바느질은 기계보다 느리고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더욱 섬세하다. 박해선 장인은 특히 시접 처리와 마감에 정성을 쏟는다. 손바느질로 마감한 옷은 뻣뻣하지 않고 유연하며, 입었을 때 몸에 자연스럽게 감긴다. "미싱은 직선으로만 박죠. 근데 사람 몸은 곡선이에요. 손으로 꿰매야 몸이 편해요." 그는 사람의 움직임을 고려한 곡선을 따라 실을 조율하며, 때로는 바느질 선을 눈에 보이지 않게 숨기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실의 장력’이다. 같은 바늘땀이라도 당기는 힘에 따라 옷의 주름이나 옷감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진다. 박 장인은 실의 종류, 천의 두께, 계절에 따라 바느질 방식까지 바꾼다. "겨울엔 두꺼운 천이 많아서 실이 더 강해야 하고, 여름엔 얇아서 땀이 스며드는 것까지 계산해야 하죠." 이처럼 바느질 하나에도 수많은 경험과 감각이 들어간다. 기계는 정해진 긴장감으로만 박음질하지만, 그는 손끝으로 힘을 조절한다.

그의 작업실에는 실 수백 가지, 바늘 수십 종이 정갈하게 정리돼 있다. 실 하나 고를 때도 수십 분을 고민한다. "실 색이 천과 정확히 맞아야 티가 안 나죠. 낮에는 자연광에서 확인하고, 밤에는 조명 아래에서 또 봐요. 조명색도 다르니까." 이런 디테일은 눈으로만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지고 감각으로 느껴야 한다. 박 장인은 이 모든 과정을 '정성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옷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꿰매는 일

박해선 장인이 만든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누군가의 중요한 순간을 위한 물건이다. 결혼식 한복, 환갑 선물로 지은 코트, 암 투병 중이던 여성을 위한 가운 등, 그의 손을 거친 옷마다 사연이 있다. 그는 항상 고객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색이 편한지를 묻는다. "바느질은 그 사람을 읽는 일이에요. 그냥 치수 재는 게 아니에요."

한 번은 10년 넘게 몸이 불편한 딸을 돌보던 어머니가 박 장인에게 옷을 의뢰했다. "딸을 위한 옷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옷을 처음 입고 싶다고 했어요." 박 장인은 그 어머니의 손을 살펴보고, 손목이 편안한 디자인, 가볍고 세탁하기 쉬운 천을 고르고, 그녀의 몸에 맞춘 외투를 만들어 주었다. 그날 그 어머니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고, 박 장인은 말없이 실을 접었다. “그런 순간이 있어요. 내가 옷을 만든 게 아니라, 마음을 꿰맨 거죠.”

그는 옷을 완성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손 글씨 라벨'을 달아준다. 라벨에는 제작일과 고객의 이름, 옷을 만든 이유 한 줄이 적혀 있다. "그 사람이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이 옷이 누군가의 삶에 작게라도 위안이 되길 바라면서요." 대량 생산된 옷에는 없는 이 섬세한 배려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다시 박 장인을 찾게 만든다. 그는 손으로 꿰맨 실보다, 마음을 먼저 꿰맨다.

AI 시대에도 손바느질이 살아남는 이유

AI는 이제 의류 디자인부터 제작,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을 자동으로 해낸다. 개인의 체형을 분석해 최적의 옷을 제안하고, 클릭 몇 번이면 맞춤 의상이 배송되는 시대다. 하지만 박해선 장인은 말한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사람이 원하는 건 결국 마음이 담긴 물건이에요." 기계는 치수를 맞출 수 있지만,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진 못한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서 희망을 본다. 공방 수업을 신청하고, 손바느질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이들이 늘었다. “빠르게 사는 데 지친 사람들이, 느린 걸 다시 찾고 있어요. 손으로 천을 만지고, 실을 꿰는 걸 통해서 자기 마음을 다독이죠.” 그래서 그는 작업 중에도 수강생들과 시간을 나누고, 기술보다 ‘느낌’을 먼저 알려준다. "어깨선 꿰맬 때는 마음을 낮추고, 단추 달 땐 집중하세요. 그 마음이 옷에 들어가요."

박 장인의 꿈은 크지 않다. 오랫동안 옷을 만들고, 가르치고, 자신이 만든 옷이 오래 입히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실을 꿰고 있다. 느리지만 정직하게, 작지만 단단하게. 바늘땀 하나마다 정성과 시간이 스며들고, 그 옷을 입는 사람의 마음에까지 닿기를 바라며.

AI가 옷을 찍어내는 시대에도, 손바느질로 만든 한 땀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