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도시 한복판에서 여전히 나무를 깎는 사람
서울 한복판, 빌딩과 도로 사이로 낡은 간판 하나가 보인다. ‘청 목공방’. 투박한 이 두 글자가 유리창에 반사된 빌딩 숲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 안에서는 매일 나무 냄새와 톱밥이 흩날린다. 이곳은 63세 김병수 목수가 35년째 지키고 있는 수공 목공소다. 수많은 공방이 사라지고, 맞춤 가구도 자동화되는 지금, 그는 오직 손으로만 가구를 만든다.
김 목수의 하루는 이른 아침 원목을 살피는 일로 시작된다. 결이 잘 살아 있는 나무인지, 수분 함량은 어떤지, 휘거나 틀어질 가능성은 없는지를 손으로 만져보며 판단한다. 기계는 레이저로 정밀하게 측정하지만, 그는 손끝의 감각으로 나무의 성질을 알아낸다. “나무는 살아 있어요. 표면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요. 결이 말해주는 걸 들어야 하죠.” 그는 어떤 나무가 어떤 집, 어떤 사람에게 어울리는지를 고려해 디자인을 구상한다.
기계는 수치를 입력하면 모든 걸 정확히 자르고, 동일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김 목수는 똑같은 가구를 두 번 만들지 않는다. 고객의 키, 생활 습관, 방의 구조에 따라 책상 높이나 수납장의 깊이도 다르게 맞춘다. “사람이 쓰는 물건은 사람을 닮아야 해요. 똑같은 가구를 백 개 만들어서 뭐 하겠어요.” 그는 도면조차 손으로 그린다. 스케치부터 절단, 결합, 마감까지 전 과정을 손으로 해내며, 하루에 가구를 한 점 완성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 느림은 오히려 고객의 신뢰로 이어진다. 그의 고객 중에는 10년 전 의자를 만들었던 사람이 자녀 책상을 의뢰하기도 한다. “나무는 오래 써야 가치가 있어요. 금방 만들어서 빨리 버리는 건 나무한테도 예의가 아니죠.” 김병수 목수는 서울이라는 가장 빠른 도시 안에서, 가장 느린 방식으로 살아남고 있다.
손이 기억하는 기술, AI가 따라오지 못하는 감각
목수의 기술은 기계와 다르다. 숫자나 설계가 아닌, 손의 기억과 감각에서 시작된다. 김병수 목수는 “손이 먼저 알아요. 톱이 나무를 자르기 전, 이게 잘릴 나무인지 아닌지 손이 먼저 알려줘요”라고 말한다. 그는 톱질할 때 나무의 결을 따라 절단한다. 거스르면 갈라지고, 따르지 않으면 틀어진다. 이런 감각은 책으로 배울 수 없고, 오직 시간과 경험으로 손에 쌓이는 것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과정은 ‘이음’이다. 못이나 나사 없이 나무와 나무를 맞물리게 해 고정하는 전통 방식이다. 기계는 나사 구멍을 뚫고, 접착제를 바르지만, 그는 손으로 끼워 맞추고 눌러 고정한다. “이음은 나무한테 상처를 안 주는 방식이에요. 오래 쓰면 더 단단해지고, 사람이 쓸수록 편해지죠.” 이 작업은 손의 힘과 각도를 세심하게 조절해야 하며, 한 번의 실수로 나무를 망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기계는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김 목수는 오히려 ‘비효율 속에서 얻는 가치’를 강조한다. “나무는 손으로 깎아야 그 속을 알 수 있어요. 결이 휘어 있는지, 속이 썩었는지는 만져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는 하루에 많은 일을 하지 않지만, 그 하루에 온전히 집중한다. 손은 느리지만, 그 손으로 만든 가구는 수십 년을 간다. 그것이 그가 여전히 선택받는 이유다.
최근 그는 손님에게 가구를 보내기 전 꼭 마무리 연마를 직접 한다. “기계로 다듬으면 표면은 반질반질하지만, 감촉이 없어요. 나는 손으로 문질러가며 마감해요. 그러면 손에 닿았을 때 나무의 온도가 그대로 전해지죠.” 그는 나무의 표면을 거칠게 두기도 하고, 일부러 매듭을 남기기도 한다. “그게 나무답죠. 매끈하기만 한 게 좋은 건 아니에요.” 그의 철학은 ‘결점까지 포용하는 아름다움’에 있다.
가장 빠른 도시에서 가장 느린 방식으로 살아남다
서울은 빠른 도시다. 모든 것이 돌아가는 속도가 빠르며, 사람들은 더 빠른 선택을 요구한다. 가구도 예외는 아니다. 대형 가구 브랜드는 클릭 한 번이면 다음 날 배송이 가능하고, 유행하는 디자인이 쉴 틈 없이 쏟아진다. 그런 도시에서 3주를 기다려야 하는 김병수 목수의 가구는 비효율의 결정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실에는 항상 주문이 밀려 있다.
그는 ‘느림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보여준다. 한 손님은 “이 가구는 쓸수록 정이 간다”고 했다. 다른 손님은 “이 책상에 앉으면 집중이 더 잘 된다”고 말했다. 김 목수가 만든 가구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고려해 만들어진 하나의 ‘동반자’다. “앉았을 때 등이 편해야 하고, 책장이 눈높이에 있어야 하고, 손이 닿는 부분이 매끄러워야 해요. 그걸 맞추는 게 기술이죠.”
그는 요즘 젊은 세대의 주문이 늘었다고 말한다. “SNS에서 보고 연락해 왔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기성 제품에 질려서, 자기만의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거예요.” 이들은 커스터마이징을 원하고, 감각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손이 만든 흔적’을 찾는다. 김 목수는 그런 요구에 맞춰 새로운 디자인을 연구하지만, 공장에서 찍어내는 방식은 절대 택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내가 만든 가구는 완성되면 끝나는 게 아니에요. 쓰는 사람 손에 닿을 때 비로소 완성이에요.” 그래서 그는 나무에 이름을 새기거나, 작은 손잡이 하나에도 손님의 취향을 반영한다. 기계는 그런 미묘한 감정의 조율을 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서울 한복판에서 그가 여전히 살아남고, 더 주목받는 이유다.
AI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사람의 손’이 만든 기술
AI는 나무 재단을 설계하고, 가구 디자인을 자동으로 추천하고, 고객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적합한 형태를 제안할 수 있다. 기계는 정밀하고, 빠르고, 오류 없이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김병수 목수는 말한다. “기계는 나무를 만져보지 않잖아요. 그래서 몰라요. 이 나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결을 가졌는지. 그건 손으로만 알 수 있어요.”
그가 만든 가구에는 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포질한 결, 톱자국의 흔적, 일부러 남긴 옹이. 사람들은 그 불완전함에서 오히려 위안을 느낀다. “요즘은 너무 완벽한 게 많아서 피로하대요. 그런 사람들은 내 가구를 보고 ‘숨통이 트인다’고 해요.” 그의 작업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삶에 맞춘 조율과 균형을 찾는다.
그는 후계자를 찾고 있다. 수십 년 쌓인 손의 감각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지만, 아직 그 감각을 받아들일 사람을 찾지 못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 해요. 근데 이 일은 하루아침에 배우는 게 아니에요. 손이 먼저 느끼고, 몸이 기억해야 진짜 기술이 돼요.” 그래서 그는 여전히 하루에 한 점씩, 묵묵히 작업실에서 나무와 대화하고 있다.
AI가 디자인을 완성하는 시대에도, 손으로 만든 가구는 여전히 존재 이유가 있다. 그 안에는 사람의 온도, 리듬, 감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김병수 목수의 하루는 기계보다 느리지만, 그의 가구는 기계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서울이라는 빠른 도시 안에서, 가장 느린 방식으로 ‘사람의 물건’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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