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구두 수선 장인의 하루 밀착 인터뷰

mystory54590 2025. 7. 5. 09:17

하루 종일 구두를 마주하는 손, 기계보다 오래된 기억

서울 을지로 골목 한편, 대형 백화점 뒤편의 오래된 지하상가.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이곳에는 매일 수십 켤레의 구두가 오가는 작은 작업장이 있다. ‘명신 구두수선’. 낡은 간판 아래에는 45년째 이 자리를 지켜온 박용채 장인이 있다. 올해 68세인 그는 여전히 매일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구두를 닦고, 꿰매고, 밑창을 교체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요즘 시대에 구두를 고쳐 신는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처럼 느껴진다. 패스트패션이 보편화되고, 수선보다 새것이 더 싸고 빠르게 구할 수 있는 지금, 박 장인은 여전히 “신발은 고쳐 신는 물건”이라고 말한다. “신발은 발에 맞춰진 도구예요. 한 번 길든 구두는 새 구두보다 더 편하죠.” 그는 고객의 구두를 손에 들고 밑창의 마모 상태, 뒤틀림, 가죽의 갈라짐을 눈으로 확인한 후, 손으로 쓰다듬듯 진단한다. “밑창은 무릎이 말해줘요. 안으로 닳았으면 바른쪽 무릎이 안 좋은 거고, 뒤꿈치가 갈리면 허리가 문제일 수도 있어요.”

기계는 눈에 보이는 균열과 마모를 인식하고 자동으로 진단하지만, 박 장인의 손은 사람의 걸음과 자세까지 읽어낸다. “신발은 걷는 습관이 그대로 담겨요. 고객 얼굴 안 봐도 걷는 방식이 보여요.” 그는 단순히 구두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복원하는 일이라 말한다. 구두를 신고 걸었던 그 사람의 하루, 그 장소, 그리고 그 습관까지 손끝에서 읽어내는 그의 기술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경험의 총합이다.

AI 시대 구두 수선 장인

바느질 하나에 담긴 수십 년의 노하우와 인내

수선이 필요한 구두는 대부분 마모되거나 손상된 부위가 명확하다. 그러나 박용채 장인의 작업은 단순한 ‘보수’가 아니다. 그는 구두를 하나의 구조물로 보고, 전체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한다. “겉만 고치면 안 돼요. 안쪽, 특히 발목 라인이나 발바닥 아치가 무너지면 고쳐도 오래 못 신어요.” 그래서 그는 밑창 교체 전에 반드시 속 깔창 구조부터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는 안창을 새로 짜서 맞춰준다.

그는 작업 중 가장 집중하는 과정으로 ‘손바느질’을 꼽는다. 구두의 갑피가 찢어졌거나 박음질이 벌어진 경우, 그는 반드시 손으로 실을 꿰어 바느질한다. “기계 바느질은 빠르지만 튼튼하지 않아요. 손바느질은 실의 긴장감을 조절할 수 있으니까, 오래 갑니다.” 그의 손에는 늘 실뭉치와 바늘이 쥐어져 있고, 구두를 무릎에 올려놓고 수백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이 작업은 하루에 많아야 두 켤레밖에 할 수 없지만, 그 품이 고객을 다시 불러오는 이유다.

기계는 좌우 대칭을 자동으로 맞추고, 필요한 만큼의 고무를 절단해 붙인다. 그러나 박 장인은 구두 한 짝 한 짝을 손으로 비교해 좌우 균형을 맞춘다. “사람 발은 원래 좌우가 조금 달라요. 그래서 똑같이 붙이면 오히려 불편하죠. 그걸 맞추는 게 기술이에요.” 특히 오래 신은 구두일수록 그 사람의 발에 맞춰 진화해 있기 때문에, 그의 수선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보완’에 가깝다.

그는 어떤 고객의 구두를 다섯 번 넘게 고친 적이 있다. “그분은 그 구두로 취업 면접도 보고, 결혼식도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 듣고 나니 더 못 버리겠더라고요.” 단순한 신발이 아닌, 인생의 순간이 담긴 물건을 고치는 일. 박 장인의 손끝은 단순한 수선을 넘어서,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고치는 손’이 잊히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식

서울의 대형 상권에서는 이미 구두 수선소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무인 키오스크나 자동 수선 서비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대부분의 소비자는 ‘고쳐 신을 바엔 새로 사자’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박용채 장인의 작업장은 여전히 예약이 밀려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고장 난 걸 고치는 게 아니라, 쓰던 걸 계속 쓸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그는 기계가 할 수 없는 ‘감정의 조율’을 한다. 고객이 오면 먼저 신발을 받고, 왜 고치려는지를 묻는다. “단순히 밑창 갈려서 오는 게 아니라, 그 신발이 가진 사연이 있어서 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걸 들으면 고치는 방식이 달라져요.” 한 번은 어머니가 물려준 남성용 단화를 가져온 고객이 있었다. 크기가 커서 신을 수 없었지만, 그는 구두 구조를 완전히 재구성해 고객 발에 맞춰 리폼했다. “그 사람 표정을 보면, 그게 고쳤다는 말보다 더 커요. 그 감정이 나를 버티게 해요.”

박 장인의 작업장엔 다양한 구두가 쌓여 있다. 값비싼 수제화도 있고, 10년 넘게 신은 평범한 운동화도 있다. 그는 구두의 가격이나 브랜드를 가리지 않는다. “비싼 구두보다 오래 신은 구두가 더 고쳐야 할 이유가 있죠.” 고객들 역시 그를 브랜드 장인으로 보지 않고, ‘마음을 고쳐주는 기술자’로 여긴다. AI와 로봇이 점령하는 시대에서도, 그의 자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사람의 발, 사람의 걸음, 사람의 기억을 함께 다루는 일. 그것이 바로 수공 수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AI 시대에도 사람의 발에 닿는 감각은 손이 만든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신체 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발 모양에 맞춘 인솔을 3D 프린터로 제작할 수 있는 시대다. 자동화된 기계는 몇 초 만에 밑창을 교체하고, 자동 진단 알고리즘은 마모 상태를 스캔해 수리 내용을 안내한다. 그러나 박용채 장인은 그런 기술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기계는 고치는 걸 보여주지만, 사람은 고치고 나서의 느낌을 생각해요.”

그의 수선은 그 구두를 다시 신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를 먼저 고려한다. 어떤 사람은 발뒤꿈치의 살이 약해 구두가 자꾸 까진다. 그는 그 고객을 위해 가죽 패드를 덧대고, 내부 구조를 재설계한다. “한 걸음 걸었을 때 편해야 진짜 고친 거죠. 고쳐놨다고 해서 신기에 불편하면 무슨 소용이에요.”

그는 앞으로도 자동화되지 않는 기술이 존재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 기술은 수천 번의 반복 속에서 감각을 터득하고,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며, 손으로 감정을 조율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수선을 단지 ‘기능 회복’이 아닌, ‘감정 회복’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발전한 AI도 아직 대체하지 못하는 분야다.

박용채 장인의 하루는 여전히 바쁘다. 손은 느리지만 정확하고, 귀는 고객의 말을 듣고, 눈은 신발의 흔적을 기억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장은 단순한 수선소가 아니라, 시간과 정성이 오가는 작은 공방이자, 구두라는 오브제를 통해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다. AI가 아무리 빠르고 정확해도, 사람의 손이 가진 감각과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살아 있는 한, 구두 수선 장인의 하루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