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40년째 칼 갈이 장인의 하루

mystory54590 2025. 7. 1. 01:53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인공지능이 문서를 정리하며, 로봇이 커피를 내리는 세상이다. 기술은 효율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수많은 직업이 “더는 필요 없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의 손이 가진 감각이다.

서울 북쪽, 오래된 재래시장 뒤편에 자리한 작은 철제 수레 하나. 수레 안에는 오래된 연마 기계와 줄, 물통, 연마석이 얌전히 놓여 있고, 그 앞에는 70세가 가까워 보이는 노인이 조용히 앉아 있다. 사람들은 그를 ‘칼 갈이 사장님’이라 부른다.

오늘은 그 칼 갈이 장인이 40년 동안 지켜온 하루를 따라가 본다. AI가 범접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손기술과 삶의 리듬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간이다.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 칼 갈이 장인

새벽 6시, 하루가 시작된다

정확히 새벽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각, 그는 시장 입구에 조용히 수레를 끌고 나타난다. 수레 바퀴는 낡아서 철컥거리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 소리는 시장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알람이다. “아, 오늘 칼 갈이 아저씨 왔네.”라고 말하며 가게 셔터를 올리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늘 같은 자리를 지킨다. 채소가게 옆, 미끄럼방지 타일이 깔린 구석진 공간. 그곳이 그의 40년째 자리다.

"이 자리, 내가 만든 거요. 아무도 여기 안 앉았어. 내가 이 자리를 골랐고, 이 자리가 나를 먹여살렸소."

그는 연마 기계를 천천히 꺼내고, 전선을 연결하고, 물통을 채운다. 아직 첫 손님은 오지 않았지만, 준비는 빠짐없이 진행된다.

손님은 말없이 칼을 맡긴다

아침 7시 반쯤, 첫 손님이 도착한다.
손에는 닭칼과 채칼이 들려 있다. 말없이 칼을 건네면, 장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계산도 없다. 얼마인지 묻는 사람도 없다.

"갈아봐서 알지. 잘 갈리면 값을 더 주고, 아니면 그냥 가. 그게 신뢰요."

그는 칼날을 눈으로 한번 보고, 손으로 날을 만져본다. 기계가 아니라 손이 판단한다. 그리고 연마 기계에 칼을 대는 순간, 철이 돌에 닿는 날카로운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몇 번 왕복이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손 줄로 섬세하게 다듬는다.

작업 시간은 5분 남짓. 하지만 그 5분 안에 들어간 그의 ‘감각’은 AI가 수천 개의 데이터로도 흉내 낼 수 없다.

칼이 아니라 사람을 다듬는 기술

그에게 물었다. “왜 이 일을 계속 하세요?”
그는 잠시 연마석에 물을 붓더니 말했다.

"내가 갈아준 칼로 생선 썰고, 고기 썰고, 밥 벌어먹고, 그렇게 하루가 흘러요. 내가 갈아주는 게 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해."

장인의 말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삶을 갈아주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의 단골은 시장 상인들뿐만이 아니다. 동네 음식점 사장, 학교 조리사, 심지어 요리학원에서 수강생들이 단체로 칼을 맡기기도 한다.

"요즘 애들은 뭐든 새로 사. 하지만 진짜 요리는 무딘 칼을 갈아 쓰는 데서 시작해."

하루 평균 20자루, 그러나 중요한 건 '정성'

그는 하루에 약 20~30자루의 칼을 간다. 많게는 50자루도 넘는다.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은 ‘정성’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강조했다.

"빨리 가는 게 능사가 아냐. 이건 사람이 쓰는 물건이고, 손에 다쳐도 안 돼. 끝까지 정성스럽게 봐야지."

그는 한번도 기계가 알아서 칼을 갈도록 맡겨본 적이 없다. 모든 칼은 손으로 쥐고, 각도를 조절하고, 힘의 세기를 달리하며 갈아낸다.

“기계가 똑같이 갈 수 있다고? 다 똑같이 무딘 칼만 만들겠지.”

젊은이들에게 기술은 남기고 싶지만…

그는 아들, 딸이 있지만 칼 갈이 기술을 넘기지는 않았다.
“안 해요. 요즘 애들이 왜 이 고생을 해.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건 사람이 좋아야 해. 손님 기다리는 걸 견뎌야 하고, 말없이 보내도 이해해야 하고.”

그는 단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기다림’과 ‘관찰’의 기술이었다.

마감은 오후 4시, 그러나 일은 멈추지 않는다

오후 4시가 되면 수레를 정리한다. 하루에 몇 만원이 수입일지라도, 그는 만족한다.
“적당히 벌면 됐지. 사람들 칼 날 세워주고, 한마디 인사 받으면 그걸로 족해요.”

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뒷모습엔, 흔들림 없는 리듬이 있다. 그것은 AI도, 기술도 대신하지 못할 인간만의 시간이다.

 AI가 대체하지 못할 한 사람의 기술

이 시대는 자동화의 시대다.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대신 알고리즘과 로봇이 빈자리를 채운다.
하지만 서울의 한 구석, 수레 하나와 물통, 연마석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칼 갈이 장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의 기술은 단지 칼을 날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을 더 안전하게, 정직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AI에게 맡기려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40년째 칼을 갈고 있는 그의 하루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기계가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답은,
**"사람의 손이 가진 따뜻한 기술"**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