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수공 도자기 장인 인터뷰

mystory54590 2025. 7. 2. 16:06

AI 시대 흙과 손이 만나 완성되는 느린 예술, 도자기를 짓는 사람

모든 것이 클릭 한 번이면 복제되는 시대다. 디자인은 AI가 만들고, 3D 프린터로 도자기 형태를 뽑아내는 것도 이제는 흔한 일이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는 수천 개가 하루 만에 쏟아진다. 하지만 여전히 흙을 손으로 만지고, 물레를 돌려 그릇을 짓는 사람이 있다. 전라남도 강진의 한 언덕 위, 조용한 흙집 공방에서 40년째 도자기를 굽는 박용기 장인이 그 주인공이다.

그의 하루는 새벽 흙을 만지는 일로 시작된다. 직접 채취해 숙성시킨 점토를 물에 개고, 고운 체에 걸러 불순물을 제거한 뒤, 손으로 주물러 부드럽게 만든다. 이 과정을 거친 흙은 최소 6개월 이상 숙성돼야 ‘쓸 수 있는 흙’이 된다. 그는 말한다. “흙도 사람처럼 시간을 줘야 말을 들어요. 성질이 급한 흙은 물레 위에서 삐죽삐죽 날뛰어요.”

AI가 모형화한 매끈한 형태와 다르게, 박 장인의 도자기는 완벽하지 않다. 손끝으로 잡아당긴 곡선, 물레의 리듬에 따라 생긴 흔들림, 유약이 흐르며 만든 자연스러운 농담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는 그걸 '흙이 숨 쉬는 자국'이라고 말한다. “도자기는 결국 사람이 쓰는 그릇이잖아요. 사람 손으로 만든 게 사람한테 가장 잘 맞아요.”

기계는 정확하고 빠르지만, 박 장인은 그 느림과 불완전함을 기술이라고 부른다. “기계는 정답을 만들고, 나는 흔적을 만들어요. 나는 그게 더 오래간다고 믿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그릇은 똑같은 게 단 하나도 없다. 수십 개를 만들어도 각기 다르고, 오히려 그 다름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AI 시대 도자기 장인

물레와 손의 호흡으로 태어나는 하나뿐인 도자기

박 장인의 도자기는 ‘기계적 완성도’보다 ‘감각의 정교함’에 무게를 둔다. 그는 물레 앞에 앉기 전, 손과 숨부터 고른다. “마음이 조급하면 물레도 흔들리고, 그릇도 삐뚤어져요. 이건 기술보다도 리듬이에요.” 손에 물을 적시고 물레를 돌리는 순간부터 그의 손과 흙 사이에는 오로지 감각만이 존재한다. 속도, 압력, 중심의 균형 모두 말이 아닌 감으로 조절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물레 앞에 앉지만, 단 하나의 형태도 완전히 같지 않다. 기계는 설정한 각도와 비율을 반복하지만, 사람의 손은 매번 다르게 반응한다. “그날 손에 땀이 많으면 더 미끄럽고, 날씨가 습하면 흙이 무거워요. 그런 걸 감으로 잡아야 해요.” 박 장인은 흙을 만지는 손의 감각이 도자기 품질의 절반 이상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는 작업을 할 때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릇 하나를 물레 위에서 다 만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5~10분이지만, 그 안에 집중력은 하루치가 소진된다고 한다. “물레 위에서의 10분은 밖에서의 한 시간 같아요. 그릇 하나 완성하면 숨이 턱 막힐 때도 있어요.” 그렇게 완성된 그릇은 날씨, 온도, 물의 양, 손의 압력에 따라 다른 유기적인 형태로 태어난다.

AI가 만든 그릇은 기능적이다. 가볍고, 튼튼하며,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박 장인의 도자기는 쓰는 사람의 손에 따라 더 어울린다. 누군가는 깊은 그릇에 국을 담고, 누군가는 잔의 무게감에 반해 매일 같은 찻잔을 고른다. 그는 말한다. “내가 만든 그릇은 설명서가 없어요. 쓰는 사람이 알아서 느끼는 거죠. 그게 진짜 쓰임이에요.”

흙과 불, 그리고 기다림이 만든 시간의 흔적

수공 도자기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굽는 일이다. 아무리 잘 빚은 그릇이라도 불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시 결정된다. 박 장인은 전통 가마를 고집한다. 전기 가마나 가스 가마는 온도 조절이 편하고 효율적이지만, 그는 흙과 불의 호흡을 체감할 수 있는 장작 가마를 사용한다. “불을 봐야 흙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어요. 그걸 손으로 느껴야 진짜 도자기가 나와요.”

가마에 불을 지피는 데만 반나절 이상이 걸리고, 1,200도까지 온도를 올리는 데 총 12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동안 불의 세기, 방향, 나무 투입량을 조절하며 온도를 관리해야 한다. 기계는 이 과정을 자동으로 조절하지만, 박 장인은 불의 색과 열기를 눈과 손으로 측정한다. “불이 너무 파랗게 타면 안 돼요. 중간에 붉은 기운이 올라올 때가 딱 좋아요. 그건 센서가 아니라 눈으로 보는 거예요.”

도자기가 가마 안에서 식는 데는 다시 이틀이 걸린다. 굽는 것보다 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있다. 박 장인은 이 시간을 ‘도자기와 대화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불이 만든 결을 확인하려면 시간을 줘야 해요. 조급하면 다 깨져요.” 그렇게 식힌 그릇들은 모두 색이 다르다. 같은 유약, 같은 흙, 같은 온도에서도 위치와 불길의 흐름에 따라 다른 무늬와 빛깔이 생긴다.

그는 이 과정을 “시간이 만든 작품”이라고 말한다. AI는 짧은 시간 안에 완벽한 모양을 구현할 수 있지만, 그릇 시간의 흔적을 새기진 못한다. 박 장인의 도자기에는 그런 기다림과 변수, 그리고 불확실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게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더 진짜로 다가간다. “도자기는 원래 느리고 불확실해야 해요. 그래야 따뜻하죠.”

사라지는 기술이 아니라 되살아나는 기술

젊은 세대는 점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멀리한다. 수익이 적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기계보다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박 장인은 그런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수공 도자기의 진짜 가치는 이제부터라고 말한다. “기계는 많아졌지만, 손으로 만든 건 점점 귀해지고 있어요. 사람들은 결국 따뜻한 걸 원해요. 오래 가는 걸 찾게 돼요.”

그의 도자기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먼저 주목 받았다. 일본과 유럽의 갤러리에서 전시 제안이 들어왔고, 실제로 그의 찻잔 하나가 수십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그는 그 이유를 단순히 ‘장인의 물건’이라 보기보다 “기계로는 못 만드는 질감 때문”이라 말한다. “사람들은 그릇을 눈으로 보지만, 나는 손으로 만지는 물건을 만들어요. 손에 닿았을 때 오는 감각은 거짓말 못 해요.”

최근에는 도예를 배우러 오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다가 흙을 만지면서 점차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박 장인은 그들에게 말한다. “기술보다 감각을 익혀요. 흙은 말은 안 해도, 다 느끼게 돼요.” 그는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아끼지 않고 전하고 있다. “이 기술은 숨길 게 없어요. 다 알려줘도 결국 손이 기억하는 거니까요.”

AI 시대에도 살아남는 수공업 직업군은 단순히 기술만 남은 직업이 아니다. 감각, 기억, 정성, 기다림까지 함께 녹아 있는 살아 있는 일이다. 박 장인의 도자기는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사람과 감정을 주고받는 그릇이다. 그래서 그의 기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계가 더 많아질수록, 그의 손이 만든 도자기는 더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