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여전히 손으로 짓는 옷이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어느새 디자인까지 맡고, 패션 산업에서도 3D 시뮬레이션과 자동 패턴 생성이 보편화되었다. 심지어 원단까지 자동 재단되고, 공장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벌씩 옷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끝으로만 완성되는 옷이 있다. 서울 종로의 좁은 골목 안, 누렇게 바랜 간판 하나가 붙어 있는 2층짜리 오래된 건물 안에서 73세 김영숙 장인은 오늘도 전통 한복을 짓는다. 그녀는 기계 재봉틀조차 쓰지 않는다. 전통 방식 그대로, 바늘과 실, 손으로만 옷을 만든다. 그녀의 하루는 아침 천을 만지는 일로 시작된다. “천을 만져보면 오늘 옷이 될지 안 될지 감이 와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AI가 감지할 수 없는 ‘감각’을 기준으로 작업을 결정한다. 천이 너무 건조하면 풀기가 없고, 너무 습하면 늘어지기 때문에, 그녀는 늘 바람의 흐름과 습도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작업한다. 누군가는 비효율적이라 말하겠지만, 그녀에겐 이 느림이 필수다. 그녀는 빠르게 짓는 옷보다 천천히, 정성스럽게 만든 옷이 더 오래 남는다고 믿는다. 요즘처럼 속도가 가치를 좌우하는 시대에, 그녀는 정성을 가치로 둔다. 그녀가 고집하는 ‘손맛’은 디지털 기술로는 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AI는 수천 장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답에 가까운 형태를 찾아내지만, 사람의 체형과 마음, 상황을 함께 고려한 옷을 짓지는 못한다. 그녀는 천을 자르기 전, 손님의 표정과 말투, 심지어 가족 관계까지 기억하고, 그 감정이 옷에 반영되도록 조율한다.
한복은 전통이 아니라, 세대 간 기억을 잇는 실타래다
김영숙 장인이 짓는 옷은 단순히 의복이 아니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만드는 건 천이 아니라 기억이에요.” 한복을 맞추러 오는 사람 중에는 ‘엄마가 결혼식에 입었던 색’을 기억해서 같은 톤으로 맞춰달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또는 외할머니가 입었던 고름의 매무새를 흉내 내 달라는 요청도 있다. 그녀는 그런 기억을 천에 담아내는 사람이다. AI는 고객의 데이터를 수치로 이해하지만, 그 사람의 지난 이야기와 감정을 옷에 반영하지는 못한다. 실제로 그녀는 한복을 짓기 전에 반드시 손님과 긴 대화를 나눈다. "어떤 자리에 입을 옷인지, 어떤 감정을 담고 싶은지, 누가 봐야 하는 옷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옷 짓기의 첫 단계다. 그녀에게 옷은 입는 도구가 아니라 표현의 수단이자 추억의 매개체다. 그녀는 신부의 첫 치마저고리를 만들면서 신부의 말투, 눈빛, 손동작까지 기억한다. 그리고 치마 길이나 고름의 각도 하나에도 그 인상을 반영한다. “어떤 신부는 고름이 날렵한 게 어울리고, 어떤 신부는 넓고 부드러운 게 좋아요. 기계는 그걸 몰라요.” 그녀는 한복을 만들 때 실의 긴장감까지 신경 쓴다. 손바느질이기 때문에 손의 힘 조절에 따라 옷의 주름, 옷자락의 흐름이 달라진다. 같은 자수 문양도 어느 날은 더 촘촘하고, 어느 날은 여유 있게 표현된다. 그날 그녀의 기분, 날씨, 손님의 표정에 따라 달라진다. 기계는 일정한 결과를 반복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바로 그 변화가 옷에 온도를 담아주는 요소다.
손맛은 데이터가 아닌 감각으로 축적된 지식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손맛’이란 단어는 단순히 수공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쌓인 감각, 반복된 실수 속에서 얻은 정답,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하는 기술이다. 김영숙 장인의 손은 결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녀의 손에는 수천 벌의 옷이 지나갔고, 수백 명의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 AI는 정교하고 빠르며, 동일한 품질을 반복하는 데는 탁월하다. 하지만 감각의 누적, 감정의 조율, 상대방의 상태를 고려한 작업은 AI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다. “옷이라는 건 사람 몸에 닿는 물건이에요. 그러니까 사람 감정도 따라와야 해요.” 그녀는 말한다. “비 오는 날은 실이 늘어나니까 바느질을 느슨하게 해야 해요. 바람 부는 날은 천이 자꾸 밀리니까 손을 더 단단히 눌러줘야 하고요.” 이런 변화는 센서가 감지해도 바로 반응하지 못하고, 설령 반응해도 일률적인 결과를 낸다. 하지만 그녀는 한복 한 벌에 세심한 조정을 수십 번 거듭하며, 마지막에 와서야 완성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작업 방식은 일정하지 않다. 실의 길이, 바늘의 굵기, 바느질 간격까지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그녀가 만든 옷은 다 똑같지 않다. 대신 모두 ‘그 사람에게 맞는 옷’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거 비효율적이라 그래요. 근데 나는 평생 이게 맞았고, 지금도 이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AI가 계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적절한 유연함’이다. 감각은 숫자가 아니라 체화된 리듬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든 옷은 희소성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증거다
김영숙 장인은 이제 은퇴를 준비 중이다. 그녀는 아쉽지만 담담하게 말한다. “이제는 내가 옷을 적게 만들수록 더 가치가 생겨요. 희소한 게 아니라, 인간이 했다는 증거가 남는 거니까요.” 그녀는 기술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계가 전면에 나선 시대이기에, 손으로 만든 것의 의미가 더 깊어진다고 믿는다. “기계는 많잖아요. 근데 손으로 만든 건 없어져요. 그러니까 더 귀해지는 거예요.” 실제로 그녀의 단골 중에는 해외 고객도 있다. 일본, 프랑스, 미국에서 이메일로 주문이 오고, 택배로 원단이 전달된다. 그녀는 천을 받으면 그 나라의 계절, 고객의 체형을 미리 고려해 디자인을 시작한다. AI도 글로벌이지만, 그녀의 작업은 그보다 더 깊은 ‘개인화’다. 옷에 감정을 담고, 사연을 기억하며, 손의 감각으로 마무리 짓는 과정은 AI가 절대 구현하지 못한다. 그녀는 말한다. “손맛이라는 건 정답이 없어요. 어떤 날은 더 깊고, 어떤 날은 얕죠. 근데 그게 진짜예요. 그게 사람이고, 그게 옷이에요.” 한복은 과거의 문화가 아니라, 지금 인간이 만든 가장 인간다운 옷이다. AI가 빠르고 효율적인 옷을 만든다면, 김 장인의 한복은 느리고 불완전하지만 ‘진짜 사람의 온기’가 깃든 옷이다. 그래서 그녀의 옷은 오래 기억된다. 한복을 입었던 결혼식,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날의 첫 사진. 그 모든 순간에 그녀의 손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복제되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AI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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