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짜지 못하는 감각, 손으로 짜야 살아나는 대나무
디지털 자동화 기술이 일상화되면서 바구니조차도 기계로 뽑아내는 시대가 되었다. 동일한 패턴과 규격, 빠른 생산 속도, 낮은 원가로 쏟아져 나오는 바구니는 이미 대형 마트의 일상적인 소비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전라남도 담양의 한 작은 마을에는 여전히 손으로 대나무를 엮어 바구니를 짜는 장인이 있다. 올해로 68세인 이정복 장인은 50년 넘게 오직 대나무 바구니 하나만을 만들어왔다.
그의 작업장은 특별한 것 없는 흙벽돌 집이다. 집 앞마당에는 대나무를 삶는 커다란 가마솥과, 말린 대나무를 쌓아놓은 작업대, 도구가 걸린 선반이 있다. 대나무를 손질하는 도구는 모두 그의 손에 맞춰 다듬어진 것들이다. 기계는 없다. 바구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나무는 급하면 안 돼요. 물에 담가야 하고, 결을 따라 쪼개야 하고, 얇게 저며야 하죠. 그냥 막 자르면 못 써요.”
AI 시대에 무슨 손바구니냐고 묻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정복 장인은 단호하다. “기계가 만든 건 그냥 담는 거고, 내가 만든 건 담기 위해 살아가는 거예요.” 기계가 반복하는 패턴이 정확하다면, 그의 손끝은 자연스러운 변화를 허용한다. 그는 대나무의 나이와 습도, 잘리는 결의 방향을 손으로 판단하고, 엮는 압력까지 그날의 날씨에 따라 조절한다. 그가 만든 바구니는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모두가 ‘손에 맞는’ 형태를 지닌다. “사람 손이 다 다르잖아요. 바구니도 그래야 해요.”
대나무 한 자루에도 살아 있는 시간과 정성이 깃든다
대나무 바구니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적당한 대나무를 구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이정복 장인은 해마다 직접 산에 들어가 대나무를 고른다. 너무 얇거나 두꺼운 대나무는 쓸 수 없고, 매끈하고 탄력 있는 34년 된 대나무만을 쓴다. "젊은 대나무는 힘이 없어 못 쓰고, 늙은 대나무는 부러져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이렇게 채취한 대나무는 먼저 삶아서 기름과 수분을 빼고, 12주 정도 말린 뒤, 다시 얇게 쪼개는 작업에 들어간다.
그는 이 작업을 ‘대나무와 대화하는 시간’이라 부른다. 얇게 쪼갠 대나무 살은 손으로 문지르며 부드럽게 다듬고, 때로는 입으로 물어가며 습도를 조절한다. “입에 대보면 알아요. 너무 마르면 뻣뻣하고, 너무 젖으면 끈적해요. 손보다 입이 더 정확해요.” 이처럼 사람의 감각을 총동원해 준비한 대나무 살은 이후 바구니를 짜는 데 사용된다. 바둑판처럼 엇갈리게, 나선형으로, 혹은 바닥은 촘촘하게 짜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기계는 이런 직조 방식을 동일하게 반복하지만, 이정복 장인은 사람마다 용도에 맞춰 짜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감 담는 바구니 쓰고, 어떤 사람은 바지락 담아요. 물 빠져야 하니까 바닥 짜는 걸 달리해야죠.” 바구니 하나에 들어가는 대나무 살은 수백 가닥, 손으로 하나하나 결을 따라 짜야 하며, 조금이라도 각도가 어긋나면 바구니가 틀어져 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 정성이 있기 때문에, 그의 바구니는 수십 년을 써도 형태가 유지된다. “내가 만든 건 한 세대는 써요. 그게 기술이고, 손맛이에요.”
빠르지 않아도 좋다, 사람의 리듬으로 짜는 기술
바구니를 짜는 일은 단순 반복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정복 장인은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있어도 바구니 하나밖에 못 짠다”고 말한다. 속도를 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손이 대나무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고, 시선은 엮이는 모양을 조율해야 하며, 허리는 구부정한 자세를 견뎌야 한다. “허리 아파도 손은 멈추면 안 돼요. 흐름 끊기면 다시 짜야 해요.” 그래서 그는 바구니 짜는 작업을 ‘리듬’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대나무 살을 물에 담가두고, 마른 살은 천으로 닦는다. 그 후에는 엮을 모양을 미리 구상하고, 도면 없이 머릿속으로 형태를 정한 뒤 바로 짜기 시작한다. 작업 중에는 말하지 않는다. “바구니는 말 안 하고 짜야 해요. 머리 쓰면 손이 느려져요.” 기계는 3분이면 바구니 하나를 만들어내지만, 그는 반나절을 들여야 작은 바구니 하나가 완성된다.
그의 바구니는 속이 다 보이는 얇은 구조지만, 무게를 많이 견딘다. 심지어 일부는 물고기나 조개를 잡는 어구로도 사용된다. “물에 담가도 틀어지지 않아야 해요. 그래서 처음 짤 때부터 조금 더 단단히 엮어요.” 이런 감각은 아무리 AI가 패턴을 학습해도 구현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숙련이다. 그가 바구니를 짜는 동안 흘린 땀과 시간은 고스란히 바구니 안에 담긴다. “바구니 하나는 내 하루예요. 그냥 물건이 아니에요.”
사라져가는 기술이 아닌,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
이정복 장인의 바구니는 이제 전통 공예 전시회에 초대받을 만큼 인정받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바구니를 실생활에서 쓰는 데 의미를 둔다. “전시용은 예쁘게 만들지만, 진짜 바구니는 써야 진짜예요.” 그의 고객 중에는 텃밭에서 채소를 수확하는 할머니도 있고, 도시의 카페에서 인테리어 용도로 바구니를 사 가는 청년도 있다. 쓰임은 달라도, 모두 사람의 손에서 만든 물건을 원한다.
그는 후계자를 찾고 있지만, 아직 마땅한 이를 만나지 못했다. 몇몇 젊은이들이 배워보겠다고 찾아오지만, 바구니 한 개를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에 지쳐 떠난다. “처음에는 다들 관심 있어 해요. 근데 3일만 짜면 손이 아프고 마음이 급해져요.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인데, 다들 거기서 그만둬요.” 그는 기술이 아닌 마음을 먼저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건 감정을 담는 일이에요.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담아야 하니까.”
AI 시대에 수공 바구니는 효율적이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비효율을 통해 위로받는다. 같은 모양, 같은 규격, 같은 재질에 지친 현대인은 조금씩 달라지는 결, 손으로 짠 흔적, 오차와 균열을 통해 ‘진짜 물건’이라는 감각을 느낀다. 이정복 장인은 말한다. “기계는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요. 나는 그걸 알고 만들어요. 그래서 오래 남아요.”
그의 바구니는 단순한 용기가 아니다. 사람의 시간이 담긴 그릇이고, 손끝에서 짜낸 인생의 무늬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대나무를 짠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사람의 기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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