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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대나무 찻잔 만드는 사람의 정성

기계가 찍어내지 못하는 한 잔의 온기산속에서 불어온 바람이 대나무 숲을 흔드는 소리만큼 정직한 소리는 없다. 전남 담양, 그 대나무의 고장에서 40년 넘게 대나무 찻잔을 만들어온 장인이 있다. 올해 69세가 된 박진문 장인은 지금도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대나무를 손질하며 하루를 연다. 그가 만든 찻잔은 전통 다도 모임이나 차 애호가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찻잔’으로 불린다.박 장인은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에는 전기톱도, 자동 연마기도 없다. 손도끼, 칼, 송곳, 줄 하나면 충분하다. “대나무는 살아 있는 재료예요. 톱날이 아니라 손끝으로 그 결을 느껴야 해요. 칼날이 조금만 삐끗해도 찻잔이 갈라지거나, 물이 새요.” 그는 대나무의 나이, 마디의 위치, 수분 함량까지 오로지 손과 눈으로..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천연염색 장인이 말하는 색의 의미

디지털 색상이 지우지 못한 자연의 색2025년 현재, 색은 숫자로 환산되고 있다. 패션 브랜드는 AI가 제안한 트렌드 색을 따라 움직이고, 디지털 그래픽 도구는 정확한 색상 값으로 일관된 결과물을 만든다. HEX 코드, RGB 값, CMYK 수치는 이제 색의 본질을 정의하는 공식 언어처럼 쓰이고 있다. 그러나 충북 괴산의 산자락 아래, 여전히 꽃잎과 나무껍질을 달여 색을 우려내는 사람이 있다. 천연염색 장인 박연화 씨(68)는 “색은 숫자가 아니라 숨결”이라고 말한다.박 장인의 공방은 마치 식물 실험실 같다. 항아리 속에는 치자, 쪽, 감, 오배자, 양파껍질, 홍화잎이 발효되고 있고, 나무 선반에는 말리고 있는 천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그녀는 이곳에서 30년 넘게 천연염색을 해오고 있다. “천연염색은..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수제 도장 파는 가게의 살아있는 역사

기계 각인 시대에도 손으로 글자를 새기는 이유서울 종로3가 낙원상가 인근, 빽빽한 간판과 LED 전광판 틈 사이로 눈에 띄는 작은 상점 하나가 있다. ‘삼덕인방(三德印房)’. 이 간판은 수십 년째 같은 자리에 붙어 있고, 유리문 안에는 손때 묻은 작업대와 붉은 인주, 칼, 붓, 그리고 도장들이 정갈하게 정리돼 있다. 77세 김남호 장인이 이곳에서 50년 넘게 도장을 새기며 살아왔다.요즘은 대부분의 도장이 컴퓨터 각인기로 찍어 나온다. 도안도 AI가 자동으로 만들어주고, 기계는 몇 초 만에 글자를 조각해 낸다. 하지만 김 장인은 여전히 손으로 도장을 새긴다. “기계는 예쁘게는 잘해요. 근데 멋은 없어요. 글자가 살아 있으려면 손맛이 있어야 해요.” 그는 나무, 소뿔, 옥, 백 동, 사파이어 등 다양한 재질..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손바느질로 만든 한 땀의 아름다움

빠름이 미덕인 시대에 느림을 선택한 한 사람2025년 현재, 패션산업은 완전히 자동화되어 있다. 원단이 자동 재단되고, 바느질은 로봇 팔이 담당한다. AI는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해 디자인을 생성하고, 공장은 수백 벌의 옷을 단 몇 시간 만에 생산해 낸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도, 서울 마포구의 한 오래된 주택가에서는 하루 종일 ‘사각사각’ 실을 꿰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64세의 박해선 장인이 운영하는 작은 손바느질 공방, 그곳에서 그는 지금도 한 땀 한 땀 옷을 짓는다.그는 30년 넘게 손바느질만을 해온 장인이다. 미싱 한 대 없이 모든 옷을 바늘과 실, 손가락의 압력으로 만들어낸다. "사람한테 맞춘 옷은 기계가 만들 수 없어요. 사람 손은 실의 긴장감도 조절하고, 그 사람 몸에 맞는 흐름도 기억하죠...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유리 공예로 생계를 잇는 청년 장인

기계보다 불을 가까이 두는 젊은 손, 유리와 마주한 인생경기도 파주의 한 오래된 창고. 외부는 아무 표시도 없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금세 공방 특유의 뜨거운 공기와 섬세한 도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33세 이지훈 씨가 유리 공예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공간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방에 들어가 유리 공예를 배우기 위해 시작했고,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리와 함께 살아왔다.AI가 예술 작품을 디자인하고, 자동 유리 성형 기계가 투명한 잔을 뽑아내는 시대. 그러나 그는 여전히 1,100도의 불 앞에 서서 유리를 불고 늘리고 굳히는 수작업을 고수한다. “유리는 살아 있는 재료예요. 손이 흔들리면 형태가 달라지고, 숨이 급하면 깨져요. 기계는 그걸 느끼지 못하죠.” 이지훈 씨는 유리..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나무 장난감 만드는 70세 노장 이야기

디지털 장난감의 홍수 속, 나무로 상상력을 만드는 사람요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쥔다. 디지털 장난감, 학습 로봇, AI 인형이 아이의 친구가 되고, 부모들은 교육 효과와 기능성을 우선한다. 그런 시대에 ‘나무 장난감’이라고 하면, 오래되고 불편하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경기도 양평의 작은 마을 공방에는 여전히 손으로 장난감을 만드는 70세 노장이 있다. 이름은 김호섭. 그는 35년 넘게 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온 사람이다.그의 공방은 소박하다. 나무 냄새가 가득한 실내에는 작은 기계 몇 대와 오래된 도구들, 그리고 완성된 나무 장난감이 정갈하게 진열돼 있다. 기차, 병정, 미끄럼틀, 퍼즐, 블록, 자동차 등 모두 나무로 만든 장난감이다. “요즘 장난감은 말도 하고, 음악도 ..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금속공예 수업을 20년째 운영하는 기술자

기계보다 사람의 손이 먼저인 교실서울 종로구의 한 예술 공방 골목, 유리문 너머로 불꽃이 튄다. 작은 송풍기와 버너, 금속판, 망치 소리가 이어지는 이곳은 장정수 기술자가 20년째 금속공예 수업을 운영하는 작업장이자 교실이다. 대학교나 문화센터가 아닌, 실제 공방 내부에서 배우는 수업은 드물다. 그는 “기술은 책에서 배울 수 없어요. 손으로 배워야죠”라고 말한다.장정수 씨는 올해 61세. 1980년대 후반부터 금속공예를 시작해 90년대엔 브랜드 장신구 납품을 하던 실무자였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학생을 받기 시작해 지금은 연간 200명 가까운 수강생이 이 공방을 거쳐 간다. 대부분 비전공자며, 순수하게 '금속을 다뤄보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다. 그는 기계가 대신하지 못할 손기술의 본질을 가르친다. “..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구두 수선 장인의 하루 밀착 인터뷰

하루 종일 구두를 마주하는 손, 기계보다 오래된 기억서울 을지로 골목 한편, 대형 백화점 뒤편의 오래된 지하상가.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이곳에는 매일 수십 켤레의 구두가 오가는 작은 작업장이 있다. ‘명신 구두수선’. 낡은 간판 아래에는 45년째 이 자리를 지켜온 박용채 장인이 있다. 올해 68세인 그는 여전히 매일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구두를 닦고, 꿰매고, 밑창을 교체하며 하루를 시작한다.요즘 시대에 구두를 고쳐 신는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처럼 느껴진다. 패스트패션이 보편화되고, 수선보다 새것이 더 싸고 빠르게 구할 수 있는 지금, 박 장인은 여전히 “신발은 고쳐 신는 물건”이라고 말한다. “신발은 발에 맞춰진 도구예요. 한 번 길든 구두는 새 구두보다 더 편하죠.” 그는 고객의 구두..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목수 이야기

디지털 도시 한복판에서 여전히 나무를 깎는 사람서울 한복판, 빌딩과 도로 사이로 낡은 간판 하나가 보인다. ‘청 목공방’. 투박한 이 두 글자가 유리창에 반사된 빌딩 숲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 안에서는 매일 나무 냄새와 톱밥이 흩날린다. 이곳은 63세 김병수 목수가 35년째 지키고 있는 수공 목공소다. 수많은 공방이 사라지고, 맞춤 가구도 자동화되는 지금, 그는 오직 손으로만 가구를 만든다.김 목수의 하루는 이른 아침 원목을 살피는 일로 시작된다. 결이 잘 살아 있는 나무인지, 수분 함량은 어떤지, 휘거나 틀어질 가능성은 없는지를 손으로 만져보며 판단한다. 기계는 레이저로 정밀하게 측정하지만, 그는 손끝의 감각으로 나무의 성질을 알아낸다. “나무는 살아 있어요. 표면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요. 결이 말..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수공업 직업군: 망치로 두드리는 동 종 만드는 사람

기계의 정밀함을 넘는 소리, 손으로 빚는 울림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시대다. 인공지능이 설계도를 완성하고, 기계가 재료를 절단하며, 3D 프린터가 물건을 뽑아내는 시대에 ‘망치’와 ‘불’로만 일하는 장인이 있다. 충남 공주의 한 야산 아래, 허름한 작업장에서 오늘도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올해 71세인 최성두 장인은 40년 넘게 동종(銅鐘)을 만들어온 사람이다.동종은 단순한 종이 아니다. 소리의 울림, 균형, 벽의 두께, 내부의 곡선 등 모든 것이 정확해야 한다. 종소리 하나가 사찰의 경건함을 좌우하고,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울려 퍼질 울림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그는 단 하나의 종을 만들기 위해 몇 달을 망치질한다. “종은 찍어내는 게 아니에요. 불과 망치, 그리고 사람의 귀로 만들어야 해요.” 그..